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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여행문화의 시간여행

1980~90년대 단체 관광버스 여행의 추억

by 이_뚜뚜 2025. 7. 8.

1. 관광버스 출발의 설렘: 노란 봉고와 확성기 안내방송

1980~90년대의 단체 관광버스 여행은 ‘여행’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설렘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이벤트로 여겨졌다. 당시에는 패키지여행이라는 개념도 생소했고, 대부분의 여행이 회사, 교회,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단체관광 중심이었다. 아침 일찍 모이는 정류장, 정해진 복장을 갖추고 차에 오르기 전까지의 풍경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특히 익숙한 것은 관광버스 앞에 붙은 노란색 혹은 붉은색 깃발, 안내자의 확성기 방송이었다. "다 모이셨어요? 3조 이팀장님 어디 가셨어요?"라는 말이 반복되고, 버스 번호 확인에 분주했던 사람들. 당시의 관광버스 출발 풍경은 혼돈 속 질서를 보여주는 독특한 문화였다. 요즘처럼 모바일 메신저가 없던 시절, 서로 이름표를 달고 이동하며, 미리 준비한 도시락과 생수는 단체여행의 필수품이었다.

 

1980~90년대 단체 관광버스 여행의 추억

2. 차 안 풍경의 백미: 노래자랑, 율동, 그리고 ‘가요무대’ 스타일 선곡

관광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동안의 차 안 풍경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요즘은 이어폰을 꽂고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지만, 그 시절 관광버스 노래자랑은 빠질 수 없는 코스였다. 버스 중간쯤 앉은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앞줄부터 돌아가며 참여를 권유한다. “자자~ 우리 김대리님 노래 한 곡 안 하시면 서운하죠~!”라는 익숙한 멘트에 이어지는 <남행열차>나 <무조건>, <찔레꽃> 같은 가요무대 스타일 선곡은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율동 잘하는 직원이 앞에서 '관광댄스'를 추기 시작하면, 뒤에서는 박수와 야유가 섞여 웃음이 터졌고, 1등에게는 소박한 경품이 주어지기도 했다. 이 모든 문화는 목적지가 아닌 여정 자체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지금 보면 촌스럽고 다소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그때만의 낭만과 공동체적 유대감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3. 관광지의 풍경과 단체 코스의 고정 레퍼토리

도착한 관광지에서도 1980~90년대의 단체 여행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대부분은 미리 짜여진 고정 레퍼토리 코스를 따른다. 예를 들어, 설악산이라면 신흥사, 케이블카, 대포항 순서가 정해져 있었고, 경주라면 불국사-첨성대-보문호수가 필수였다. 이 코스는 마치 공식처럼 운영되었으며, 어디를 가든지 관광지 앞 기념촬영은 빼놓을 수 없었다. 단체복이나 모자를 맞춰 쓰고, “하나, 둘, 셋~ 김치!”를 외치며 찍은 사진은 이후 직장 게시판에 붙거나 사보에 실렸다. 관광지는 늘 붐볐고, 동선은 짜여 있었지만, 그 안에선 다양한 인간관계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사적인 대화, 몰래 산 기념품, 누군가의 짝사랑, 또는 회식의 연장선 같은 술자리까지. 이런 집단여행의 문화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사회적 의식’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4. 단체여행에서 자유여행으로: 사라진 문화와 남은 감정

2000년대를 지나면서 여행은 점점 자유여행 중심으로 바뀌어 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의 발달은 더 이상 안내자나 단체의 필요성을 없앴고, 여행 일정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정되었다. 셀프 항공권 예약, 숙소 후기 확인, 구글맵을 활용한 루트 설정까지 모두 혼자 가능해진 시대.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도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함께였기에 웃을 수 있었던 에피소드들, 어색한 사람들과 가까워졌던 순간들, 단체 노래자랑에서 무심코 얻은 박수 같은 것들. 관광버스 단체여행의 감성은 단지 낡은 문화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느낌’을 공유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요즘 세대는 아마 상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단체 관광버스 여행은 잊지 못할 하나의 ‘사람 냄새 나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